 도널드 레드포드, 윌리엄 데버, 카일 맥카터, 존 콜린스 발제 /
허셜 섕크스,잭 마인하르트 엮음 /
강승일 옮김 / 147쪽 / 7,000원
Aspects of Monotheism -How God Is One
Symposium at the Smithsonian Institution October 19, 1996
이 책은 미국 성서고고학회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에서 주최하여,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Aspects of Monotheism 이라는 제목으로 한 강연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모두 미국 학계를 대표하는 성서학자, 성서역사학자, 고고학자, 이집트 학자 등이 발표한 것으로 이집트의 아켄아텐의 유일신앙과 이스라엘의 유일신앙의 관계 / 고대 이스라엘의 민간신앙에서 야훼 하나님이 배우자 여신이 있었던 것으로 여겼는지에 대한 논쟁을 Kuntillet Ajrud 에서 발견된 비문을 통해 살펴보았고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유대교의 유일신앙과 기독교 신학의 유일신 사상에 대한 강연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장점은, 현재 미국 학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강연이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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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글들
“네 명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성경의 주장을 이집트학, 고대근동 고고학, 구약성경 역사학, 초기 유대학의 네 학문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성서학, 유대학, 기독교 신학에 관심이 있는 누구든지 이 강연에 귀를 기울이기를 권장한다.”
- 제임스 샌더스(James A. Sanders) 클래어몬트 대학교 신학부 명예교수
“본서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학자들로서 고대근동의 역사와 성경의 종교 및 성서고고학의 최근 연구결과들을 가지고 명쾌하고 간단한 문장들로 본서의 주제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특히 카일 맥카터(Kyle McCarter)의 강연은 신선한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다른 강연들도 역시 최고 학문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은 이 중 어느 것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 프랭크 크로스(Frank Moore Cross) 하버드 대학교 고대근동학과 명예교수
“도날드 레드포드의 이집트 파라오 아케나텐의 유일신앙에 대한 솔직한 평가로부터 윌리엄 데버의 이스라엘 민간종교에 대한 흥미진진한 설명, 카일 맥카터의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대한 새롭고 혁신적인 토론, 그리고 존 콜린스의 기독교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솔직한 해설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복잡한 문제들을 보기 쉬운 지면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어느 누구도 이 책의 내용이 담고 있는 학문적 정직함과 진지함, 그리고 풍부한 지식의 양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 에릭 마이어스(Eric M. Meyers) 듀크대학교 종교학부 교수
“복잡한 주제를 흥미진진하고 분명하게 다룬 책이다. 이 책은 유일신앙에 관한 어려운 질문들을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다. 철학, 신학, 역사학, 고고학 등 모두가 논의되고 있다. 수많은 고고학적 유물들의 사진들과 지도, 고고학적 발굴 장소의 평면도 등이 함께 실려 있어서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유대교와 기독교보다 앞선 시대에 대한 논의들은 특히 오늘날의 믿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 필립 킹(Philip J. King) 보스턴 대학교 신학부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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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들 소개
-도널드 레드포드(Donald B. Redford)는 최초의 유일신론자로 불리는 아켄아텐 연구의 권위자이다. 현재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교수인 레드포드는 1972년 이래로 펜실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아켄아텐 신전 프로젝트의 감독으로 일하면서 아켄아텐에 대한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레드포드의 저서로는 Egypt, Israel and Canaan in Ancient Times 와 Akhenaten: The Heretic King 등이 있다. 그는 Oxford Encyclopedia of Ancient Egypt 의 총 편집자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또한 오페라 Ra 의 작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윌리엄 데버(William G. Dever)는 아리조나 대학교의 고대근동학 및 인류학과의 명예교수이다. 수년간 예루살렘에 살면서 1966년부터 1971년까지, 그리고 다시 1984년에 게제르(Gezer)에서 고고학 발굴을 했다. 또한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예루살렘의 윌리엄 올브라이트 고고학 연구소(William F. Albright School of Archaeological Research in Jerusalem)의 책임자로 있었다. 데버는 성서고고학에 대한 수많은 논문들과 책들을 저술했다. 그는 또한 Oxford Encyclopedia of Near Eastern Archaeology 의 이스라엘/팔레스틴 분과의 편집 책임자이며 Anchor Bible Dictionary 의 고고학 분야 조언자였다. 그의 책들중에 최근의 것으로는 Who Were the Early Israelites and Where Did They Come From?, Did God Have a Wife? Archaeology and Folk Religion in Ancient Israel 등이 있다.
-카일 맥카터(P. Kyle McCarter, Jr.)는 존스홉킨스 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의 고대근동학과에서 William Foxwell Albright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고대근동 및 동양학회(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의 회장을 맡은 바 있고, Anchor Bible 시리즈의 사무엘상, 하 주석을 썼다. 고고학, 성서학, 비문학, 본문비평학 등등 가장 넓은 분야에 걸쳐서 권위자로 인정받는 그의 최근 저작으로는 Ancient Inscriptions: Voices from the Biblical World가 있다.
-존 콜린스(John J. Collins)는 현재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카톨릭 성서학회(Catholic Biblical Association)의 회장으로 및 각종 저널들의 편집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사해문서 편집팀에 속해있기도 하다. 그의 여러 저서들 중에 최근의 것으로는 다니엘서 주석(Hermeneia 시리즈), The Apocalyptic Imagination: An Introduction to Jewish Apocalyptic Literature, The Bible after Babel: Historical Criticism in a Postmodern Age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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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약력
강승일
장로회신학대학교(Th. B., M. Div)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고대근동학과 박사과정(Ph. D.)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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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문
이 책은 유일신 신앙의 여러 가지 측면들에 대한, 가장 흥미진진하고, 신선하며, 이해하기 쉬운 강연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서고고학회(Biblical Archaeology Society)의 주최로,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the Smithsonian Institution)에서 열린 좌담회의 내용을 담은 이 책은, ‘유일하시고, 보편적인 하나님’이라는 다양하고 복잡한 개념에 관한 네 명의 대표적인 학자들의 독창적인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이 책이 다음과 같은 민감한 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말로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유일신을 섬겼던 최초의 사람들인가, 아니면 그들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먼저 유일신앙을 가졌었는가?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정말로 유일신론자들이었는가, 아니면 하나의 보편적인 신이라는 개념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후대의 산물인가? 이 주제에 대하여 고고학은 어떠한 답변을 줄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신 야훼 하나님에게는 배우자 여신이 있었는가? 고대 이스라엘의 민간신앙은 어떤 점에서 구약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유일신론의 테두리를 벗어났던 것일까? 또한 기독교의 신앙은 어떠한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성자 예수님의 신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로서, 과연 우리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책의 강연 내용들은 이러한 여러 문제들을 단도직입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또한 놀라운 해답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비록 난해하고 철학적인 성격의 주제를 다루고, 또한 다양한 학문적인 논의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네 명의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쉬운 언어로 그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볼 때에, 나는 이 책이 대학교 강의실에서뿐만 아니라, 비슷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 일반인들의 모임에서도 널리 사용될 책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또한 이 책은 수 없이 많은 더욱 발전적인 토론들을 이끌어내는 초석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러한 내용을 처음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독자들이 부럽다.
허셜 섕크스 (Hershel S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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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서문
첫 번째 강의
아켄아텐의 유일신앙 -도날드 레드포드 (Donald B. Redford)
두 번째 강의
고대 이스라엘의 민간신앙: 야훼에게 배우자 여신이 있었는가? -윌리엄 데버 (William G. Dever)
세 번째 강의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 -카일 맥카터(P. Kyle McCarter, Jr)
네 번째 강의
유대교의 유일신앙과 기독교 신학 -존 콜린스(John J. Collins)
청중과의 질의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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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일부 소개)
청중과의 질의응답
질문: 아켄아텐의 태양숭배는 단순히 종교적 개혁이었습니까, 아니면 정치적 권력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도날드 레드포드: 사람들은 아켄아텐이 뭔가 감추어진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들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마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카르낙에서 발견된 비문들에 비추어보면 아켄아텐의 새로운 태양신전에는 수천 명의 사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사제들은 단순히 옛 사제집단에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사람들일 지도 모릅니다. 옛 신전들이 벌어들이던 수입이 이제는 새로 생긴 태양신전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아켄아텐과 태양을 섬기기 위해 새로 지어진 태양신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경제가 무척 어려웠던 아켄아텐의 통치가 끝날 무렵과 그 이후 잠시 동안 사람들은 다시 옛 신전들을 찾기 시작했으나 이 신전들은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습니다. 완전히 버려진 채로,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있었지요. 이런 상황에 대해 신들이 이집트를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질문: 아켄아텐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이론들이 있는데, 하나는 유대교의 유일신앙의 선구자로서 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견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아켄아텐은 추상적 존재를 섬기던 것이 아니고 하나의 사물, 즉 태양을 섬겼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아켄아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레드포드 박사께서 강연 중에 언급하셨던 구절, 즉 태양빛 속에 거하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구절을 예로 들곤 합니다. 즉, 아켄아텐은 우주에 편만한 최고의 신에 대한 추상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레드포드: 글쎄요, 저는 그의 사상이 그렇게 추상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로 보면요. 사실 그는 아둔한 물질주의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질문: 아마도 “추상적”이란 단어는 제 질문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가 범신론적이거나 또는 우주적 신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나요?
레드포드: 우주적이긴 했으나, 범신론적은 아니었습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이론들에 대해 말하자면, 아켄아텐을 모세의 스승, 그리스도와 같은 인물, 순교자, 등등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시각들은 소설 작가들의 관심을 끌어왔지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러한 시각으로 저작된 많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이 시기의 이집트에 대해서 그러한 수많은 제 2, 제 3의 문학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허구적 작품들이 종종 마치 권위 있는 역사적 자료처럼 인용되곤 했구요. 하지만 일단 그렇게 허구를 믿게 된 대중들의 관심을 실제 역사적 자료가 말하고 있는 진실로 되돌리긴 쉽지 않았습니다. 만일 아켄아텐에 대한 반발이 있다면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전 시대의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일 것입니다.
질문: 아켄아텐의 시절에 이집트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주적인 신의 개념은 한 나라의 신보다는 전 우주나 전 세계의 신의 개념에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요?
레드포드: 동의합니다. 태양원반은 모든 땅의 신이요, 인종과 언어에 상관없이 모든 민족들의 창조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이미 이집트 만신전 최고의 신이었던 아문의 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주적 신의 개념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켄아텐은 이러한 개념에 주의를 좀 더 기울였던 것이지요.
질문: 아까 강연하실 때 왕비 네페르티티가 아켄아텐의 개혁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어다고 넌지시 말씀하셨는데요, 여기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레드포드: 예, 네페르티티에 대해서 말이죠. 이집트 문화가 항상 국가 전체의 중심인 파라오에게 집중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네페르티티의 영향은 놀라운 것이죠. 테베에 있는 아켄아텐의 신전들이 왕비 네페르티티만을 위해 지어졌다는 것도 놀랍구요. 이 신전에는 오직 그녀 혼자서 아켄아텐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들, 즉 태양신을 경배하며 예물을 바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왕은 그 신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이 초기 부조 작품들에서 네페르티티는 아켄아텐보다 두 배나 자주 등장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를 일부 학자들은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생각하고 있고, 또한 아켄아텐의 새로운 계획에서 그녀의 비중이 컸다고 주장합니다. 불행히도 네페르티티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녀의 시어머니인 왕비 티예(Tiye)의 경우 그녀 앞으로 된 편지가 남아있어서 티예에 대한 개인적 정보들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지만, 네페르티티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녀와 관련된 어떤 편지도 남아있는 것이 없지요. 그래서 네페르티티는 미스테리입니다.
질문: 교수님 생각에는 아켄아텐이 도입한 개념들이 어느 정도로 살아남았을까요? 거의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처럼 보이는데요. 그리고 곧 다시 이전의 방식으로 되돌아갔구요. 후에 아켄아텐의 생각들을 반영하는 것들이 있었나요.
레드포드: 아켄아텐의 가르침이 계속 이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의 아마르나(Amarna)로의 도피, 그의 죽음, 그 이후 이집트가 정상괘도로 되돌아온 것 정도만 알 수 있지요. 이 내용들이 이집트 민간전승에 보존되었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기원전 3세기 프톨레미 왕들을 위해서 그리스어로 이집트의 역사를 기술한 이집트의 사제였던 마네토(Manetho)의 기록만 가지고 있습니다. 마네토는 당시 여러 판이 존재했었을 왕들의 리스트를 가지고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거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료를 참조해 넣었습니다. 아마르나 시대에 관련된 기록에 이르면, 마네토는 유대-헬레니스틱 논쟁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세와 이스라엘이 이집트 문헌에 등장하느냐 하는 건데요, 이 전통을 우습게 아는 자들은 “절대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마네토는 “등장한다”라고 말하려는 듯 합니다. 그는 “왕 아멘호텝” 시절에 사람들을 채석장으로 일하도록 보낸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요? 가능성 있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질문: 일신주의(one-godism)과 유일신사상(monotheism)에 대해 구분지으셨던 것에 대해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레드포드: 저는 구분을 지은 게 아닙니다. 단지 이 강연의 제목인 “monotheism”이란 용어를 좀 피해보려고 했던 것 뿐이지요.
질문: 피라미드의 구조 자체가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유일신 사상을 암시한다는 데에 동의하십니까?
레드포드: 피라미드의 구조라...
질문: 왜냐하면 피라미드는 위로...
레드포드: 예, 피라미드는 위로 올라갈수록 정점에 이르게 되어있지요. 그게 유일신앙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는데요. 그러나 피라미드의 형태는 태양신과 연관되는 거룩한 물건, 즉 벤벤 스톤(Benben Stone)과 관련이 있습니다.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기록에 따르면, 벤벤 스톤은 태양 광선의 묘사를 담고 있고, 거룩한 물건으로 숭배의 대상이었지요. 이 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돌이 운석이었다는 주장도 있었지요. 그러나 이 돌의 형태는 피라미드처럼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가 피라미드라고 부르는 장례용 건물들의 형태와 이 돌의 형태가 서로 연결이 된 것이지요.
질문: 시편 104편은 아켄아텐에게 바치는 기도인가요? 만일 그렇다면, 이는 유일신앙 사상이 계속 이어졌다는 의미입니까?
레드포드: 그 시편의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편의 반은 아마르나에 있는 아켄아텐의 비서 아이(Ay)의 무덤에 새겨진 태양원반에게 바치는 찬송을 개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대로 베껴 쓴 것은 아닙니다. 이 시편의 나머지 부분은 하나님의 영웅적이고 남성적인 면을 칭송하고 있지요. 이는 아켄아텐의 찬송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예가 있는데요. 아마르나 시대에 오늘날의 레바논 해변가에 있던 티레(Tyre, 성경의 두로)의 왕이 이집트로 보낸 편지입니다. 아카드어로 기록된 이 편지에는 티레의 왕이 이집트의 태양신에게 바치는 찬송을 고스란히 번역해 인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많은 가나안 부족장들이 어렸을 때 이집트의 왕궁에서 교육을 받곤 했는데, 티레의 왕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가나안 마을의 족장의 지위를 넘겨받았지요. 이들 중 많은 수가 거의 어린 이집트 아이들이나 마찬가지여서 이집트어를 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궁정에서 들었던 이 찬양시를 아카드어로 번역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므로 이 시들은 분명 아켄아텐 이후에 구두로 전승되었을 것입니다. 그 외 다른 것들도 구두 전승을 통해 오늘까지 전해진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질문: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는 프로이드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습니까?
레드포드: 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어 동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투트모세의 이름에도 등장하지요. 이 이름의 형식은 “신 누구가 태어났다”라는 의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집트사람들의 이름들은 여기에서 신의 이름을 제외하고 줄여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칭으로 줄여서 모세라고 부를 수도 있었던 것이지요.
질문: 이집트 신들의 삼중 관계, 또는 삼위일체적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기독교의 삼위일체가 여기서 나온 건가요?
레드포드: 이는 교회 역사가들이 답할 문제입니다. 제가 이집트의 삼위일체적 측면에 대해 말한 것은 프타(Ptah)에게 바치는 아주 흥미로운 찬미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프타와 다른 여러 신들을 찬양하고 난 후에 이 찬미가는 모든 신들은 결국 셋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감추어진 능력인 아문, 태양신 레(Re), 그리고 지구의 신 프타(Ptah)이지요. 뒤이어서 항상 지상에 존재하는 세 도시들, 테베, 헬리오폴리스, 멤피스를 언급합니다. 이 중에서 프타는 소위 멤피스 신학(Memphite Theology)의 핵심이 되는 신입니다. 이 찬미가는 그 내용이 마치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가 지은 것과 비슷합니다. 프타가 우주의 본질이며 합리적 사고나 설명이 가능한 어느 곳에든 존재하지요. 프타는 그의 창조 안에 존재하고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명령하고 지시합니다. 이 찬미가는 아주 매력적인 문헌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는 유일신적이라기 보다는 혼합주의적입니다.
질문: 이집트의 일신론이 이스라엘의 여러 현상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왔지요. 교수님께서는 모세가 언제 쯤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지요. 말씀하신대로 모세는 이집트식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집트는 오랜 기간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배했구요. 고고학에 따르면 이집트화 된 물건들이 많은데, 이집트의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제 이집트 것은 아닌 것들 말입니다. 유다와 필리스티아(성경의 블레셋)에도 이집트의 영향이 있었구요. 시편 104편도 고대 이집트 작품의 영향을 받았구요. 명백하게든, 아니면 암묵적으로든 문헌이나, 고고학적으로 보아도 이집트의 영향은 컸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집트의 일신론적 사고가 이스라엘의 유일신앙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나요? 제가 한 말이 옳은가요, 아닌가요?
레드포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철기시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이집트의 것들로 보이는 유물들은 종종 페니키아에서 온 것들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군요.
윌리엄 데버: 절대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페니키아의 영향력이 훨씬 컸지요. 이집트의 영향은 페니키아를 통한 간접적인 것이었습니다.
레드포드: 즉 이집트의 물건들은 페니키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에 도착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네게브와 유다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 이집트에서 온 것이 얼마나 적냐 하는 것입니다. 이집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저는 캐틀린 케년(Kathleen Kenyon)이 예루살렘에서 발굴할 때에 함께했지요. 그녀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을 발굴했지만, 그 중 이집트에서 온 건 단지 두 개의 부적용 장식물들 뿐이었습니다. 철기 2기 때의(기원전 1000-586)의 예루살렘은 그랬습니다. 제 생각에 네게브와 시내 사막이 심각한 방해물이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기대하는 그러한 문화적 접촉은 없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입니다. 이집트의 영향은 크지 않았습니다.
이제 문학적 유사성을 논할 차례군요. 시편 104는 태양원반에 대한 찬양시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잠언 22:17-23:14도 아멘엠오페의 지혜(Wisdom of Amenemope)라는 이집트 문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예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상 1장을 보면, 한나가 아기를 낳기 직전에 찬가를 부르지요. 높은 자가 낮아지고, 낮은 자가 높아지며, 슬퍼하는 자가 기뻐하고, 기뻐하는 자가 슬퍼하며,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하게 된다는... 이것은 이푸웨르(Ipuwer)에게서 나온 것입니다(이푸웨르의 교훈은 기원전 22세기 경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몇몇 문학적 주제들은 분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직접적인 문학적 접촉이 이루어졌는지는 잘 알 수 없지요.
질문: 교수님이 보시기에 이집트의 일신적 사고는 초기 이스라엘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레드포드: 만일 아켄아텐에 대해 물으시는 거라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전통적인 유일신사상을 말하고, 아켄아텐은 오직 한 신만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집트와 접촉을 하던 시기인 철기시대와 그 이후에 이집트는 다신교로 유명했습니다. 철기 시대의 이집트는 결코 유일신적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켄아텐의 유일신앙은 야훼신앙과는 너무 다릅니다. 왜 이 두 사상이 서로 비교가 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정말로 아켄아텐의 종교에는 별 내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켄아텐의 종교는 윤리적인 가르침이 없습니다. 모세의 유일신앙에는 반대로 윤리적 내용이 가득하지요. 저는 둘 사이에 아무런 관련성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데버: 또한 둘 사이에 커다란 시간의 간격이 있지요. 아켄아텐의 종교는 이스라엘의 유일신앙이 생겨나기보다 5-6 세기 이전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수가 없지요. 아마도 구전으로 수세기 동안 남아 있다가 알려졌다면 모를까요.
질문: 이스라엘의 유일신앙이 발생한 시기가 언제쯤인가요?
데버: 고고학적 증거는 애매모호합니다. 어머니 여신상들은 왕정시대 마지막까지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0-9 세기보다 8-7세기 때 오히려 더 많이 사용되었구요.
질문: 이 여신상들은 공식종교, 또는 유대교의 주류에서마저도 유일신 사상의 일부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배제하는 것인가요?
데버: 유일신 사상의 흐름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제 논점은 단지 고고학적 자료들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성경을 과소평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의 문맹률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후에 성경이 된 본문들을 읽을 수 있었을까요? 아주 적은 숫자만이 가능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 고대 사회에서는 1-2 퍼센트만의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글 속에 남아있는 기록들은 일반 사람들의 생활을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일반인들의 삶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고요.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존재했던 사람들 말입니다.
질문: 성경본문에 근거해서 언제쯤 이스라엘의 유일신앙이 생겨났나요?
카일 맥카터: 당시 그 지역의 특징적인 유일신앙은 바로 국가의 신을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각 지역마다 수많은 예배 장소가 넘쳐났던 중기나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750-1200)의 종교와는 다른 것이었지요. 철기 시대의 특징은 국가의 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원전 12세기 쯤의 일입니다. 비록 성경에는 이 당시에 기록된 문헌은 남아있지 않지만요. 철기 시대에 페니키아 지역을 제외하고는, 남쪽 지중해 연안에서 전형적인 종교의 형태는 아마도 유일신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신들도 하이포스태시스를 거쳐 독립적이거나 반-독립적인 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질문은 바로 야훼가 언제 이스라엘의 국가의 신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언제 야훼신앙이 생겨났냐는 거죠. 이 질문에 접근하는 한 방법은 개인의 이름에 야훼를 포함하는 이름들이 이스라엘 전통에서 최초로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에 야훼 이름을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 누구지요? 아마 사울 왕국 때부터였을 것입니다. 족장들은 야훼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사 시대에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러나 사울의 아들 중 한 명은 야훼이름을 가졌고[말기수아], 또 한 명은 바알 이름을 가졌습니다[이스바알].
질문: 교수님께서는 국가신들에 대해 말씀하시는데요, 이는 단일신론하고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를 다스리는 자는 우리의 국가의 신이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다른 신이 있다는.... 국가의 신은 우주적인 신이 아니잖습니까? 야훼가 언제 우주적 신이 되었나요?
맥카터: 질문하신 분의 말이 맞습니다. 이 국가의 신들은 단일신론의 범주에 더 잘 들어맞습니다. 철기시대 국가의 신 야훼신앙에서 언제 진정한 유일신앙이 등장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요, 두 가지 중요한 움직임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입니다. 이 때 여러 신들의 형상들과 각 지방의 산당들을 제거했었지요. 예루살렘으로의 예배의 중앙집중화는 신의 추상적 관념, 즉 유일성에 중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이 멸망함과 동시에 하나님은 그가 거하던 장소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상에 거하는 장소가 사라지게 되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은 더 추상적이 된 것이죠. 바로 이 우우적 하나님의 개념이 기원전 6세기 제사장들이 이루어 놓은 가장 큰 업적입니다. 기원전 6세기가 유대교의 유일신앙이 등장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존 콜린스: 그와 함께 언급할 만한 다른 사항들이 있습니다. 문명 기원전 7세기의 산당들의 파괴가 하나이고, 6세기의 제사장들의 신학이 또 하나입니다.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32-37)에 또 다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헬레니즘 시대에 와서는 다른 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었던 것이지요.
질문: 그렇다면 기원전 6세기 중반에 기록된 제 2 이사야는 어떤가요? 제 2 이사야도 다른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나요?
콜린스: 제가 보기에 제 2 이사야는 다른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2 이사야는 다른 신들은 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 덧붙이자면, 헬레니즘 시대와 그 이후로도 랍비 시대에도 다른 민족들은 그들의 신을 섬겨야 한다는 사상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이 자기 자신의 신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불경건한 것으로 보았지요. 이와 동시에 일부 헬레니즘적 유대교 문헌에서는 모든 나라들은 유대교의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데버: 자 보세요. 제 친구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바를요. 모두 글로 적힌 자료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잖아요? 유일신앙이 글에 언제 처음으로 나타나는지는 하나의 관건입니다. 저는 다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일반사람들이 행하던 종교적 관습은 어땠습니까? 예를 들어 에돔의 신 중에 우리가 아는 신이 코스(Qos)밖에 없기 때문에, 에돔의 종교를 유일신앙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에돔의 여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러나 키트밋(Qitmit)에 있는 에돔의 신당에는 남성과 여성의 형상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민간종교에서는 성경이 묘사하는 것과 전혀 다른 종교의 풍습들이 있었습니다.
콜린스: 여신 숭배가 언제 사라졌지요?
데버: 그에 대한 답은 “켤코 사라진 적이 없다”입니다. 소위 원시종교에서도 여신상들이 무척 흔했습니다. 만일 그 옛날 봄의 풍요 축제를 보고 싶으시다면 3월에 아리조나 대학교 캠퍼스에 오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에서 행해지던 것과 비슷한 것들을 보실 수 있으실 테니까요.
질문: 지중해 전역에 이러한 작은 여신상들이 널려있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사회에서, 힘 있는 자리에서 조직적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 많은 인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제겐 별로 다가오질 않는군요.
데버: 제가 말했듯이, 여신상들은 위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제 비주류적인 견해로는 아세라 숭배는 종교개혁 운동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조직적으로 언더그라운드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후대의 랍비들은 아세라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도 못했습니다. 아세라는 카일 [맥카터]가 말한 가증스러운 것(히브리어로 미플레쳇)의 일종이었죠. 이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성경에 단 한 번 언급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릅니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무시해버리지요. 아세라는 고고학적 증거들과 우가릿 문헌에서 다시 발견될 때까지 잊혀졌던 것이지요. 모든 고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여성들은 약자였음이 분명합니다. 문서들도 남자들이 기록했고, 남자들의 입장과 관심을 반영했을 뿐이지요. 만일 성경의 여러 책들중에 여성이 기록한 것이 있다면 놀랄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여성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언급들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에 우리가 가진 이 성경의 전통은 이런 면에서 왜곡되어 있습니다. 고대의 집들을 발굴해내고, 그것들을 통하여 가정의 종교관습에 대한 정보를 얻음으로써 우리는 여기에 있는 제 동료 중 한 명이 언급한 말씀 중심적 역사 연구에 균형을 맞출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사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물들, 문화적 유산들에 더 이끌리게 되었고, 이런 부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싶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또 하나의 전통입니다. 성경의 전통 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전통도 잘 알아야 합니다.
레드포드: 하나 도움이 되는 말을 하자면, 헬레니즘 시대와 초기 로마 시대에 지중해 지역 전체에서 가장 유행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집트의 여신인] 이시스(Isis) 숭배였습니다.
콜린스: 동정녀 마리아와 관련된 민간종교의 풍습을 되살려보려는 시도도 있었지요. 그런데 완전히 베드로에게 밀려버린 것 같습니다.
질문: 저는 이스라엘의 공식 종교는 예언자 아모스와 관련이 있고, 보편적 종교는 예언자 이사야와 에스겔과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맥카터: 아모스나 이사야보다 이전인 철기시대가 시작된 이후 새로운 정치적 단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적어도 전통에 따르면 사울이나 다윗(기원전 10세기)에 와서야 여러 도시국가들을 통합한 국가의 단위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롭고 더 커진 정치적 단위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국가의 신을 섬겼지요. 이 국가들은 다른 특징들을 지녔습니다. 그 예가 바로 언어입니다. 각 국가 고유의 언어(방언)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는 암몬이나 모압의 언어와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이 두 국가로 나누어진 후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언어와 남 유다의 언어에 차이점들이 생겨났습니다. 글씨체마저도 달랐지요. 요지는 이 국가들은 자기 국가 고유의 특징들을 갖게 되었고, 종교도 그 고유한 특징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들이 사회통합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민간종교와 공식종교를 구분할 때 우리는 종종 성경에 남아있는 예언자들의 전통을 잊곤 합니다. 빌(데버를 가리킴), 예언자들은 꼭 엘리트 집단만은 아니었네.
데버: 아니었지. 동의하네.
맥카터: 성경이 놀라운 것은 성경에는 공식적 입장들 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입장들도 기록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지요.
데버: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제시한 두 가지 극단적 입장들 사이에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예언자적 전통이 있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지금 말씀하신 예언자적 흐름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아모스는 국가의 입장에서 글을 썼고, 에스겔은 보편적 입장에서 글을 썼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맥카터: 바벨론 포로시대(기원전 586년 이후)에 살았던 에스겔은 어쩔 수 없이 보편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아모스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에 의하면 야훼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고, 블레셋을 갑돌(Caphtor)에서 불러낸” 분이십니다. 마치 야훼가 다른 국가들의 신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야훼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장법을 쓴 듯한 인상을 줍니다. 예, 맞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아모스는 다소 국가적 입장에서, 에스겔은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질문: 데버 교수님이 성경에 언급되지 않는 여신상들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며 약간 무시하는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문학이 추구하는 이상주의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리고 이게 바로 중요한 게 아닐까요?
데버: 문학은 삶이 아닙니다. 문학은 몇몇 사람들의 상상력의 결과이지요. 물론 문학도 삶, 실제의 삶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단지 몇 명만이 경험하는 그런 삶이지요. 지금까지 학자들은 문학작품들의 전통들에 근거해서 과거를 재구성해 왔습니다. 그럼으로써 과거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뒷전으로 밀어내 버렸지요. 저는 고고학이 아니고서는 잊혀졌을 사람들을 되살려내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들에 대해 더 많을 것을 알아낼 방법들을 가지고 있구요. 한 마디 더 하자면, 저는 여신상들을 사용했던 유다의 여자들, 또는 남자들이 야훼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이들은 야훼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야훼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요. 이런 것이 바로 야훼의 창조적 활동의 한 측면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고대인들은 우리보다 더 앞서나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질문: 교수님께서 성령을 지혜와, 그리고 결국엔 여성적 이미지와 연관시킨 것에 놀랐습니다. 헬레니즘 문학에는 여신 아테나(Athena)가 있고, 유대교 문헌에는 호크마, 즉 지혜가 여성으로 등장합니다. 기독교의 성령도 본질상 여성으로 인식되었나요?
콜린스: 역사적으로 지금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주장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후에 기독교 교부 신학에서 성령은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후에 중세의 기독교 사상의 일부 흐름에서는 여성으로 나타난 성령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질문: 구약이나 신약 어디에서 성령의 개념이 등장하나요?
콜린스: 구약성경에는 초기부터 하나님의 영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성령의 개념과 더 근접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종종 로고스와 동일시되지요. 또한 프뉴마, 영과도 동일시됩니다. 스토아 학파의 로고스의 개념에 있어서는 영은 또 다른 개념으로, 여기서는 세상의 영혼, 또는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영을 의미합니다. 스토아 학파나 헬레니즘 유대교 모두에게서 성령과 로고스는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가 로고스와 동일시되고, 성령은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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