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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봉구 wrote:
>아름다운 영혼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구약성서의 ""창세기 이야기의 진실""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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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루게될 주요 주제들은 천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절에 논의 되었더라면 당장에 이단이나 악마로 몰려 화형에 처해지고도 남을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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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창세기와 관련된 오늘 다루게 될 주요 가설들은
>1. 에덴의 동산은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아직까지 사유기능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인 동물적인 삶을 살던 시절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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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담과 이브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인류의 기원을 표현한 것이 절대로 아니며, 아담(""사람""이라는 의미)이라는 동물적인 인간본체에서 이브라는 인간의 사유기능이 분화.발달하게 되는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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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악과는 인간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물적인 에덴의 동산의 상태에서 인간의 사유기능이 발달함에 따라 자기자신과 사회적인 측면에서 사물을 옳고 그름과, 유익하고 해로움의 이원적인 상태로 구별하는 본질적인 사유기능의 속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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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대가로 하나님이 부과한 여성이 출산시 갖는 고통 기원설은 인간이 사유기능(여자)을 사용하여 유용한 지식(자식)을 획득하기 위한 장기간의 교육과 노력, 고통의 과정을 상징하고, 남성이 일을 하게 되었다는 기원설은 인간이 사유기능으로 어렵사리 얻은 사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현실화하고 구체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기술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의 기원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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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이 받은 저주와 여자의 후손들과의 관계는 뱀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본능과 여자로 상징되는 인간의 사유기능과의 대립적인 관계를 상징하고 뱀이 여자의 후손들의 발뒤꿈치를 물려고 하나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게 된다는 것은 뱀으로 상징되는 본능이 여자의 후손인 인간의 사유기능에서 분화.발달된 이성과 윤리의식, 합리적인 판단력에 의해 억압되는 것을 상징하며, 뱀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저주인 땅을 기어다니게 된 기원은 뱀으로 상징되는 여러가지 본능적인 측면이 동물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들어나 있으나 인간에게는 지면으로 상징되는 무의식적인 측면에 가라앉아 있다가(지면을 기는 상태) 필요시 드러나서 뱀처럼 의식을 단숨에 휘어 감는 특성을 상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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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수 천년간 자신의 삶의 의미와 정서적인 안정의 토대로 받아 들여왔던 종교교리의 절대적이고 신성한 내용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될 필연적인 과업이기에 수 십억명의 종교인들의 정서적인 혼란과 자기부정의 과정이라는 되 돌릴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기가 도래될지라도 인류가 자기자신의 본질에 대하여 눈을 뜨고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글을 게재합니다.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진정으로 인간적인 종교혁명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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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물리적으로 가장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인간을 만물의 영장자리에 올려놓았으며 오늘날 고도로 발달된 과학 물질문명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든 인간적인 특성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의 생각하는 힘을 선택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종교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철학을 논할 때 가장 잘못 알고 사실중에 하나가 종교와 철학이 충돌하고 대립하는 정신활동으로 그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일반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실중에 하나는 ""생각이 없으면 종교가 없다""는 사실이며 종교와 생각하는 기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앞으로도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 한 종교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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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인간의 사고기능이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과연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올바른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의 본질은 무엇인가?등과 같은 철학적인 주제들중에서 생각의 본질과 관련된 동양철학과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과 선악과의 의미를 철학과 진화론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해 봄으로써 종교와 인간의 사고기능의 본질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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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수십억명 이상의 독자를 지닌 최장기 베스트셀러인 성경의 첫머리인 구약성서 창세기의 에덴 동산과 선악과의 개념을 살펴봄으로써 선사시대 선조들이 ""생각하는 힘""에 대해 느꼈던 본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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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의 동산에서 쫒겨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세기는 유대민족에 전승되어 내려오던 신화와 전설을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이자 10계명을 만든 모세가 정리하여 종교교리로써 후대에 남긴 것으로 신화와 종교연구에 더 할나위없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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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의 첫머리에 나오고 세상에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라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나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신화는 문자가 없던 시절에 소멸성을 지닌 말을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정보처리화 함으로써 인간의 정서적인 면에 호소하여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기록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동안 생존해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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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모든 종류의 씨앗들이 겉으로 들어나 보이는 껍질이라는 보잘 것 없는 외투속에 실질적인 생명에 대한 모든 유전정보와 영양분은 속알맹이에 간직하고 있듯이 신화의 외적인 겉 내용은 씨앗의 껍질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며 소멸성을 지닌 말을 인간에 정서에 호소하여 잊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왔고, 신화의 실질적인 내용은 그 속에 상징적인 형태의 알맹이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와같은 신화구조와 체계를 염두에 두고 성경의 창세기부분의 신화적인 내용속에 들어있는 알맹이를 꺼내 정신적인 양분으로 소화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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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말씀드린 가설들과 관련하여 성경공부도 할겸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선악과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창세기 3장 5절에 뱀이 이브에게 ""너희가 그것(선악과)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와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즉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창세기 3장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라는 신화내용이 있습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신화의 전형적인 황당무계한 모습으로 뱀이 인간과 말을 하고, 선과 악이 열리는 나무가 등장함으로써 이와같은 이야기는 우리들의 정서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여 깊은 인상을 남기며 기억속에 오랫동안 저장되며 자식들에게 자연스럽게 들려줌으로써 문자가 없었던 시절에도 후대에 까지 원형 그대로 전달될 수가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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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은 비현실적인 창세기 선악과 신화의 겉껍질속에 간직된 지적인 정보의 알맹이를 꺼내기 위하여 분석을 진행해 보면
>앞의 창세기 3장 5,6,7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선악과는 눈이 밝아지거나, 지혜롭게 할 만한 그 어떤 대상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생각하는 힘, 사고의 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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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가 사악한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어서 결국은 부끄러움을 알고,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선악으로 상징되는 인간과 인간 세상에 선한것과 악한 것, 옳은 것과 나뿐것,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구별하게 되는 사고기능이 탄생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생각하는 힘, 즉 사고기능의 본질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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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창세기 에덴의 동산의 선악과의 개념이란 인간이 육체적인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영장자리에 오를수 있었던 사고기능을 갖게 되고 사물을 선악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써, 자기자신의 행동이나 외부의 사물을 나와 세상에 옳을 것인가 그른 것인가, 유익한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불필요한 것인가로 구별하고 인식하는 인간의 사유능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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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와 같이 선악과로 상징되는 사물의 속성을 날카롭게 꿰뚫는 사유기능의 발달로 자연을 지배하고 만물의 영장자리에 올랐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자기자신과 사물과의 유대 고리가 끊겨 때로는 부질없는 생각을 위한 생각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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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실례로써 불교신자인 성철스님이 말한""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명언이 성철이라는 노승의 모든 구도정신과 정신적인 혼이 깃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도 이런 연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사물을 사유기능의 선악과적인 정보측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전체성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회복해 나가야 함을 역설한 것이라고 판단되고, 그밖에도 라즈니쉬등의 수많은 명상가들이나 노자의 핵심 사상등에서도 사물을 선악과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역설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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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몇가지 의문점을 살펴봄으로써 선악과가 인간의 사유기능의 본질적인 특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아담과 이브의 관계가 남녀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본체와 사유기능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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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인간이 벌거벗고 살았던 에덴의 동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덴의 동산은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아직까지 사고기능이 발달하지 못하여 동물적인 삶을 살던 시절을 상징합니다. 사고기능이 없으므로 자기자신의 행동이나 사물에 대하여 좋은 것 나뿐 것, 유익한것 해로운것등의 구분없이 그져 자신이 태어난 본능대로 행동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던 시절을 상징합니다.
>지상최고의 낙원이라고 일컬어 지는 에덴의 동산이 동물적인 삶을 살던 시절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우선 성경책에 인간이 사악한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는 에덴의 동산에서 벌거 벗고 살았다는 사실에서 찾아볼수가 있겠습니다. 역사시간에 배운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구별하는 기준으로써 생각하는 동물,직립보행이나 손을 사용한다것 이외의 또 다른 특성중에에 하나가 바로 ""인간만이 옷을 입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옷은 인간만이 입고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나체의 상태는 동물과 똑같은 상태의 삶을 상징하며 본능적인 삶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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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는 하나님의 땅이며 그토록 아름다웠던 지상최고의 낙원으로 에덴의 동산을 인정하지만 그들이 내세에 가려는 곳은 에덴의 동산이 아니라 바로 천국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에덴의 동산은 천국이 아니며, 다만 인류가 진화의 과정에서 동물적인 본능으로 옳고 그름의 선악과적 사고기능 없이 살던 시절을 의미 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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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선악과를 따먹도록 이브를 유혹한 뱀은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인간이 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그 말이 지칭하는 공통분모적인 개념이나 이미지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 뱀하면 떠올릴수 있는 공통적 연상은 ""땅위를 기어다닌다. 무섭다, 사악하다. 공격적이다, 공격시에는 고개를 지면으로부터 쳐든다. 손발이 없다등을 예로 들수가 있습니다.
>이중에서 기어다닌다는 의미는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앞의 두손이 뒷발과 그 기능이 분화되지 못하고 기어다니던 시절에 보였던 본능적인 삶의 형태를 뱀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듯이 진화의 과정에서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두손이 자유롭게 되고 인간의 사유기능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고도 문명생활을 영위하는 인류의 모습으로 발전해 나왔다고 생각됩니다.
>
>부가적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중 ""무서운 생각이 별안간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에서 사고기능이 뱀과 같이 기어다니는 가라앉은 상태에서 고개를 쳐드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고, 또한 ""좋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라는 문장도 우리가 생각을 인식하는 개념이 아래에서(지면) 위로 떠오르는 그 어떤 작용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지면은 본능적인 삶의 영역이나 인간의 무의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또한 뱀의 중요 특성중에 하나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손발이 없다는 사실로써 이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자리에 올려놓은 무기가 결코 보잘 것 없는 손발자체가 아니며, 공격하기 위해서 바짝 긴장한 뱀이 고개를 쳐든 상태와 같이 생각하는 힘이 인류의 최고의 무기이자, 뱀처럼 사악한 측면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
>그러므로 뱀은 에덴의 동산에서 네발로 기어다니던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삶을 사는 상태에서 진화하여 고개를 쳐들고 뱀과 같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세상을 선악과적인 옳고 그름과 유익하고 해로운 것인가?라는 생각하는 힘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
>여기서 한가지 더 중요하게 살펴볼 것은 이브로 상징되는 인간의 사고기능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사물을 옳고 그름으로 구별하는 목적이 바로 뱀의 공격적이고 간교하고 사악한 유혹에서 이루어 졌듯이 인간의 사고기능자체는 자기자신과 외부사물에 대한 공격적인 행위이며, 또한 자기자신의 이익,편리함,안전을 위하여 선악과적인 사유기능으로 세상을 대하며 여기서 얻어진 지식을 바탕으로 외부사물을 마구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동기가 그 본질이며 목적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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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세계평화를 부르짓는 것이나,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고자 노력하는 행위자체도 평화나 지구자체의 보전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깨지거나 생태계가 깨짐으로써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등이 위협받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측면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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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뱀은 왜 오늘날 이성적인 측면이 발달한 남성 아담을 놔두고 감성적인 측면이 발달한 여성인 이브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을까? 선악과 신화에서는 여성이 선악과를 먼저 따먹었으므로 여성이 남성보다 이성적인 기능이 더 발달해 있어야 순리인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두 번째 가설인 ""아담과 이브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인류의 기원이나 남녀간의 우열적인 권력관계를 표현한 것이 절대로 아니며, 아담(사람)이라는 동물적인 인간본체에서 이브라는 사유기능이 분화하는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서속에 나오는 아담은 성이 구분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성서에서 창세기 3장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아담을 쫓아 내신 다음 하나님은....""이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담과 이브""가 같이 쫓겨난 주체가 아니라, 오직 아담이라는 사람자체만이 쫓겨남으로써 이브는 현실적인 여성이 아니라 아담이라는 사람에게 있는 생각하는 기능임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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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갈비뼈 한 개를 빼내어 이브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담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동물적인 전체성의 구조에서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오면서 동물적인 속성과는 완전하게 구별되는 인간의 사유기능이 독립적으로 발달하게 되는 과정을 갈비뼈 하나가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갈비뼈는 인체를 구성하는 뼈대의 일부분으로써 인간의 기본적인 골격을 상징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개의 갈비뼈중에 하나라는 의미는 인간의 사유기능이 인간이라는 전체적인 속성중 하나의 기능임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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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아담이라는 인간의 동물적인 본체와 이브라는 인간의 사유기능의 관계를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의 동물적인 본체는 아니며 다만 동물적인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혁명적으로 변형된 모습임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대한 정의인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문장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분석해 보면 주어는 ""인간""이며 주어의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속성을 나타내는 보어는 ""동물""이라는 점이고 ""생각하는 기능""은 다만 인간이 동물이라는 커다란 속성을 수식하는 부분적인 특성을 나타내고 있을뿐입니다.
>이 문장의 구조에서 ""생각하는""이라는 속성을 빼고도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문장은 성립될수 있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이라는 문장은 불완전한 문장으로써 성립되지 못함을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문장과 아담의 갈비뼈를 하나 빼내어 이브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동물적인 본체와 사유기능간의 관계를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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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을 지녀서 동물들과는 완전히 구분된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간의 본질자체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다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생명력을 지닌 동물이라는 측면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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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간의 본체와 사유기능의 관계를 아담과 이브라는 남녀관계로 표현한 것은 인간의 본체와 사유기능이 마치 남녀가 서로를 강렬히 그리워하고 결합하려는 상태와 똑같음을 상징하기 위해서 소재로 선택되었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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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갈비뼈가 여성이 되고 여성이 인간의 사유능력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성서에서 아담의 여러개의 갈비뼈에서 하나를 빼내고 그 자리를 살로 메꾸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실제로 갈비뼈가 하나 없게되면 우리의 몸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균형을 잃어서 제대로 살아갈수가 없듯이 인간이 문명화된 세상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동물적인 본성의 구조를 변형시키고 희생하여 탄생시킨 사유기능을 제대로 발휘해야만 올바른 삶을 살아나갈수 있다는 상징이며, 인간의 몸에는 갈비뼈가 여러개 있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의 전체적인 본질 자체가 아니며 다만 갈비뼈 하나로 상징되는 인간의 부분적인 구조와 속성중에 하나일뿐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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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이브를 유혹한 뱀에게 부여한 하나님의 징벌의 의미는 무엇인가?
>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징벌은 오늘날여성이 출산시 고통을 갖게되었다는 기원설로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 종교인들에게조차 의심없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화처리된 부분으로
>우리가 남녀의 차이점을 살필 때 이브라는 여성이 남성과 가장 쉽게 구분되는 특징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출산시의 고통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임신과 출산, 출산시의 고통의 의미는 인간의 지식이나 지적인 능력은 제 아무리 천재라 해도 하루아침에 인간사회에 유용한 지적인 능력이나 지식체계를 구축할수 없으며 인간들이 문명화되고 지식화된 세상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장기간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거치고 사물에 대한 지식과 문명사회의 규범등 다양한 지식정보체계를 잉태시킴으로써 결실을 맺어야 성인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수 있듯이 인간에게 생각하는 힘이 있더라도 지식의 축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아기가 뱃속에 잉태되어 조금씩 보이지 않게 자라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온갖 노력과 시간을 수반하는 본능적인 측면의 희생이라는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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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인류가 오늘날의 고도의 과학문명의 기반이 되는 지식을 축적하게 된 것이 자신의 사유기능만 믿고 사과나무 밑에 가만히 누어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듯이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로 기록된 세월만도 수천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역사이전의 선사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이 사물에 대하여 반복 체험한 정보와 지식들이 효과적인 정보 전달수단과 기록장치가 없으므로 당대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오는 과정에서 문자의 발명으로 비약적으로 지식의 축적이 가능하게 된 과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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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인간이 성인으로써 성숙한 사회생활과 문화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유기능을 사용하여 언어의 체득과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지식등, 가령 외국어나 자신의 전공분야의 지식을 현실속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을 필요로 함으로써 인간이 지식을 창출해내고 습득하는 과정은 여성의 잉태와 출산의 과정과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
>일상적으로 작가들의 저작물에 대하여 소유권이나 창작권등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는 것은 개인이 사유기능을 사용하여 오랜세월에 걸쳐 노력과 희생의 대가로 지식이라는 결정체를 잉태하고 출산한 것을 자식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통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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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나님이 창세기 3장 16절에서 이브에게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이브로 상징되는 인간의 사유기능이 남편(아담)이라는 인간본체를 마음대로 하려고 움직이려고 하나, ""현실과 생각은 다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사유기능이나 생각이 한 인간의 전체적인 측면을 지배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인간의 사유기능이 한 인간의 감각적인 현실이나 감정, 본능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 우리가 일상생활속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
>남자가 일하는 죄를 부여 받게되는 것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짐으로써 자신에게 옳고 그름과 유익하고 해로운 것을 구분할수 있는 사유기능을 갖추게 된 여성으로 상징되는 사유기능의 작용으로 출산의 고통이라는 대가로 얻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옳은 것과 유익한 것은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며(쌀과 채소등의 보다 많은 수확을 위해서 노력하고) 해로운 것과 무익한 것은 제거하고(엉겅퀴와 잡초등을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행위) 관리해 나가는 기술과 행동(일)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었음을 상징합니다.
>
>그러므로, 여성의 출산의 고통과 남성의 일이라는 하나님이 부여한 징벌은 인간이 선악과로 상징되는 사유기능을 발달시킴으로써 동물과는 구별되는 문명적인 삶의 양식이 초래한 인간 생존환경의 근본적으로 변화된 상태를 상징합니다.
>
>마지막으로 이브를 유혹한 뱀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부과 받는 장면이 창세기 3장 14,15절에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너는 저주를 받아, 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
>이는 앞의 가설에서 이미 말씀드린대로 뱀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본능과 여자로 상징되는 인간의 사유 기능과의 대립적인 관계를 상징하고, 뱀이 여자의 후손들의 발뒤꿈치를 물려고 하나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게 된다는 것은 뱀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본능이 여자의 후손인 인간의 사유기능에서 분화.발달된 이성과 윤리의식, 합리적인 판단력에 의해 억압되는 것을 상징하며, 뱀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저주인 땅을 기어다니게 된 기원은 뱀으로 상징되는 여러가지 본능적인 측면이 동물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들어나 있으나 인간에게는 지면으로 상징되는 무의식적인 측면에 가라앉아 있다가(지면을 기는 상태) 필요시 드러나서 뱀처럼 의식을 단숨에 휘어 감는 특성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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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뱀의 속성은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며 자신의 생존과 편리함으로 위하여 동식물을 마음대로 잡아먹고 환경을 마구훼손하는 이기적이고 사악한 인간의 필요악적인 측면을 상징하기도 하며, 또한 보통시에는 풀속에 꽈리를 틀고 숨어 있어 눈에 뛰지 않다가 소리도 없이 스스르 다가와 별안간 인간을 공격하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거나, 휘감아 버려 꼼짝하지 못하게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성본능이나 적개심등의 동물적인 공격적인 본능이 평상시에는 뱀과 같이 꽈리를 틀고 풀속에 숨어있듯이 의식의 수면아래에 조용히 있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바짝 쳐드는 뱀처럼 의식을 뚫고 나와 한 인간의 자아와 의식을 공격하거나 휘어 감아 본능적인 행동에 휩싸이게 하여 때로는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을 사회에서 비난받게 하거나 격리시켜 버리는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모습을 상징하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강간이나 바람끼, 폭력과 살인등의 충격적인 사건의 원천이 되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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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타 맹수나 독충에 비해 인간과 뱀은 천부적으로 원수지간으로 기억되며 본능적으로 더욱 미워한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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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로 선악과를 인간의 사유기능의 옳고 그름과 유익하고 해로운 것을 구별하는 인식능력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확고부동하고 결정적인 증거는 다름아닌 창세기 3장 18절에 명명백백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땅이 네게 가시덤블과 엉겅퀴를 낼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구절의 상징적 의미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기전까지는 땅에서 못먹는 풀이며 인간을 괴롭히는 가시덤블과 엉겅퀴가 없었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
>지구의 역사나 식물의 생성과 진화의 과정을 살펴봐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는 땅에서 과일, 채소, 밀, 쌀등 인간이 먹을수 있는 유익한 식물만이 자란 것이 결코아니라 가시덤블과 엉겅퀴 독초등 영양가와 맛도 없고 인간에게 쓸모없는 풀들도 자연스레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
>그러나, 인간이 오랜세월에 걸친 진화와 발달과정에서 어느 시기인가부터 생각하는 기능을 갖추게 됨으로써 만물을 존재 자체로 보지 않고 저것이 나에게 유익한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 저것은 위험한대상인가 아니면 안전한가?
>등의 선악과적인 측면으로 바라보게 됨으로써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기 이전까지는 그냥 풀이나 나무로써 아무런 인식이나 생각없이 대하던 과일이나 채소 밀과 쌀 가시덤불과 엉겅퀴등을 구별하고 정리하여 정보화 할수 있는 인식능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즉,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땅에서 나는 식물이 모두 인간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무익하거나 해로운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이들을 먹지 않는 상태를 초월하여 이들이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밀이나 쌀과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제거함으로써 보다 많은 식량과 에너지를 안정되게 확보해 나갈수 있는 문명의 발달과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
>동양철학의 주요 이론중에 하나인 음양론은 다 아시다시피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고, 뜨거운 것이 있으면 차가운 것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추한 것이 있듯이 사물을 단면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양면성이나 전체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바라보려는 사고방식입니다.
>
>동양의 음양철학이론도 선악과와 마찬가지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선악과적인 인식태도로 대하는 인간의 사유기능의 속성을 상징할뿐입니다.
>즉, 높은곳이 있으면 낮은곳이 있거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는 인식행위는 사물의 본질적인 특성이 아니라 사물의 부분적인 특성을 자기자신의 인식행위를 통하여 평가하고 정보화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려는 인간의 정신작용의 속성이라 하겠습니다.
>
>결론적으로 인간은 동양의 음양이론이나 서양의 선악과라는 생각하는 힘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사물을 접하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으며, 구약성서의 창세기이야기에서 결국은 종교와 신화와 철학이 하나로 융합되고 있음은 인간 정신의 본질은 하나이며 종교나 신화 철학은 다만 인간의 하나뿐인 정신적인 본질이 그 모습을 달리 표현하고 있는 형식에 불과하다는 귀중한 사실입니다.
>
>끝으로, 저는 결코 수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성서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성서를 통하여 문자가 없어서 자신들의 삶과 정신적인 발달수준등을 효과적으로 후세에 알릴수 없었던 옛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신화를 통하여 있는 그대로 복원해 보고자 성서의 창세기 부분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
>물론 제가 사용한 분석방법에 저의 주관성이 개입될 수 있고, 현재의 사회적인 통념상 종교교리나 신화적인 내용은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거나,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개인의 상상력에 의해서 천차만별의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고 주장할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을 주장했을 당시에는 어느 누구 하나 그의 가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외면하고 그를 이단과 악마의 화신으로 간주했다는 역사적인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유기능과 인식작용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천체물리학적 사실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태양이 동녘하늘에서 힘차게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으며 코페르니쿠스적 시절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일관되게 우리는 ""해가 중천에 떠있다""라는 문장을 사용하지 ""지구가 힘차게 자전하고 있다""는 문장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지적인 사실과 우리들의 정서적인 느낌사이에는 커다란 강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
>제가, 현재 내릴수 있는 성서에 대한 부분적인 결론은 성서의 내용은 인간자신과 문명의 정보에 대하여 문자가 없던 시절에 소멸성을 지닌 말로써 구성된 신화적인 측면과 문자가 보급되어 지식과 정보를 효과적으로 기록할수 있게된 후 평범한 문장으로 구성된 부분을 구분하여 신화적인 종교교리부분은 단지 기록적인 측면을 염두에 두고 구성된 외적인 측면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신화의 외적인 기록성이라는 열매의 껍질속에 숨겨져 있는 생명력을 지닌 알맹이를 꺼내어 하나씩 정신적인 양식으로 소화해 나가는 것이 성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판단됩니다.
>
>끝으로 창세기 3장 22,23,24절에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끝없이 살게되어서는 안 되겠다"" 고 생각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내 쫓으시었다. 그리고 땅에서 나왔으므로 땅을 갈라 농사를 짖게 하셨다. 이렇게 아담을 쫓아 내신 다음 하느님은 동쪽에 거룹(천사)들을 세우시고 돌아가는 불칼을 장치하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게 하셨다."" 다는 신화적인 방식으로 처리된 성서내용은 선악과를 따먹어 눈이 밝아진 인간들이 지식을 축적해옴에 따라 스스로 생명을 창조하거나 변형시키고 생명의 획기적인 연장등의 열쇠가 될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실현을 앞두고 있는 현 시대에 시사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
>※ 어려운 내용을 읽어보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아울러 미력하나마 저의 20여년간에 걸친 꿈 해석 능력에서 얻어진 경험과 신화분석 능력을 총동원하여 창세기의 2,3장부분을 분석해서 글을 올렸으나, 저의 말재주와 표현능력의 부족으로 이해하시기 어려운 부분도 상당히 많았으리라 판단됩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 2000. 12.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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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에서 모봉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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